매일성경

20220922(목) - "헤브론에서 있었던 일" (삼하3:17~26)

오늘 본문은 헤브론에 있었던 선한 일과 악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헤브론의 이스라엘의 중심이요, 보금자리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다윗이 하나님의 약속의 자리인 헤브론에 와서 유다지파이 왕이 된 후 이스라엘 전체가 이제는 헤브론으로, 다윗에게로 오고자 했음을 17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여러 번 다윗을 너희의 임금으로 세우기를 구하였으니"

이처럼 지금까지는 내 뜻을 이루려는 자인 아브넬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았지만, 놀랍게도 오늘 본문에서는 아브넬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도구로 사용됨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그대로 하라"(18절), 그리고 아브넬은 행동으로 옮깁니다. 19절 "아브넬이 또 베냐민 사람의 귀에 말하고 아브넬이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온 집이 선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다윗의 귀에 말하려고 헤브론으로 가니라" 헤브론에 합당한 선한 일이 시작됩니다.

다윗이 선한 일을 위해 온 아브넬을 환대했습니다.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평화의 약속이 맺어집니다. 21절 "아브넬이 다윗에게 말하되 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을 맺게 하고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하리이다 하니 이에 다윗이 아브넬을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가니라" 약속대로만 되면 그동안 사울과 다윗 사이의 오래고 오랜 아픈 역사를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그러나 헤브론에서 이루어진 선한 일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실현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전쟁에 나가서 다윗과 함께 헤브론에 없었던 요압이 헤브론에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요압이 이 일을 반대할 것이라는 것은 삼하 2장에 요압의 동생 아사헬이 자기 욕심 때문에 죽은 이야기를 구구절절 적어놓은 것에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요압은 자기가 없는 동안 아브넬이 다윗과 언약을 맺고 평안하게 갔다는 얘길 듣고 다윗에게 따집니다. 24~25절 “24 요압이 왕에게 나아가 이르되 어찌 하심이니이까 아브넬이 왕에게 나아왔거늘 어찌하여 그를 보내 잘 가게 하셨나이까 25 왕도 아시려니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온 것은 왕을 속임이라 그가 왕이 출입하는 것을 알고 왕이 하시는 모든 것을 알려 함이니이다” 그리고 요압은 헤브론에 합당하지 않은 악한 일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로 끝나지만, 내일 말씀 39절은 다윗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말합니다.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 하니라” 다윗은 기름부음 받을 때도 약한 소년이었고, 약할 때 아멜렉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헤브론으로 돌아와 왕이 되었습니다. 모두 약할 때 강함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자신의 약함을 이유로 든 것은 오늘 말씀에서 다윗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다윗 역시 자기 뜻을 따랐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3절에 이스라엘 본토에 본인을 지지하는 세력이 없으니, 압살롬의 어머니, 요단 동편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와 결혼한 것입니다.

이 결과 안타깝게도 오늘 본문의 헤브론에서 있었던 선한 일과 악한 일 모두 다윗의 의지나 결단보다는 아브넬과 요압의 의지와 결단의 결과였습니다. 다윗 이야기를 쓰면서 다윗이 주인공되지 못하였고, 오히려 자신의 신하조차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왕이었음을 드러냅니다.  어제 말씀에 이어 오늘 말씀도 내 뜻을 이루려는 자의 모습을 버려야 함을 분명히 선포합니다.

 

"헤브론에서 있었던 일" (삼하3:17~26)

작성자
석광호
작성일
2022-09-22 08:45
조회
955
전체 1

  • 2022-09-22 11:24

    오늘은 각 인물 속으로 감정이입을 해 봅니다.

    * 다윗
    기름부음을 받았으나, 반쪽짜리 왕이었고
    주변 세력은 막강해서, 그 세력들과 화친하려면
    여러 후궁을 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기름 부으셨으면 책임져 주셔야 하는데 하는
    하나님께 대한 약간의 억울함이 있지 않았을까요?

    * 이스보셋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아들로 당연히 왕이 되어야 되는 명분이 있었고
    그 명분으로 인해 아브넬과 11지파가 이름 뿐인 왕으로 세웠습니다.
    사울이 힘이 있었을 때는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신분이었으나,
    아브넬이 힘을 잡아 그 힘으로 근근히 왕노릇을 하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짐작이 됩니다.

    * 아브넬
    왕이 될만한 실력은 있었으나, 명분이 없어 왕이 되지 못하고
    권력을 잡아 누리고는 있으나 다 갖지 못하는 억울함이 있었겠지요.
    게다가, 능력없는 이스보셋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까지 하니...

    * 요압
    명분과 능력을 모두 갖춘 다윗 왕에게 충성했고, 충성하는 과정에서
    아브넬에게 사랑하는 동생을 잃었는데...
    다윗 왕이 아브넬을 용서하고, 평화롭게 보냈다니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동생의 원수를 갚아야 하는데요.

    세상은 억울한 일 투성이 인 것같습니다.

    누구나 억울함을 품을 수 있으나, 그 억울함을 어떤 방법으로
    해소 할 수 있을까가 숙제 인 것 같습니다.

    억울함의 문제는 법이나, 도덕, 이성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으로 풀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들어주는 "순한 귀", 충고나 조언을 자제하는 "무거운 입술"
    진심으로 기도 해 주는 "따듯한 심장"으로
    억울한 마음들을 위로 할 수 있다면...
    멋진 "이순"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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