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20220928 - "오직 여호와 앞에서"(삼하6:12~23)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천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 중심의 나라를 세우기 원했습니다. 무리 3만명을 모으고 다양한 악기로 찬양하는 합주단도 준비했습니다. 정말 멋지고 정성드린 행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윗 자기의 뜻이었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행사가 종교적 자기만족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법궤를 옮기다 웃사가 죽는 등 큰 충격과 슬픔을 겪은 후, 법궤는 3개월 동안 에벧에돔의 집에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일전에 큰 사고가 난 것은 법궤의 문제가 아니라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리지 못한 까닭이었습니다. 이를 깨달은 다윗은 행사의 거품을 빼고 예배 중심으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다시 옮겼습니다. 합주단도 나팔 하나로 간소화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서 육보일제, 곧 여섯 걸음에 한 번씩 제사를 드리며 옮겼습니다. 다윗은 온 백성과 함께 기쁨으로 춤을 추었습니다. 법궤를 준비된 장막에 안치한 후에 다윗은 백성을 축복하고 남녀를 막론하고 떡과 고기와 말린 포도 등을 나눠주었습니다. 모두가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다윗이 춤출 때 치마처럼 생긴 에봇이 펄럭이며 허벅지가 드러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사울의 딸이자 다윗의 왕비인 미갈이 창문을 통해 보면서 심중에 그를 업신여겼습니다. 그리고 가족에게 축복하러 왕궁에 들어오는 다윗에게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라며 쏘아붙였습니다.

물론 다윗의 모습이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말한 것처럼, 그것은 오직 여호와만 의식하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미갈은 그 기쁨의 잔치에 몸은 물론 마음도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관망하는 자리에서 비판하며 비아냥거렸던 것입니다. 그는 죽는 날까지 자식 없이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의 포장에 우리의 종교적 만족을 위한 예배나 행사가 되지 않도록 늘 주의하며 말씀에 거해야하겠습니다. 미갈을 반면교사 삼아, 공동체의 일에 관망자가 아니라 동참자가 되어야하겠습니다. 다윗처럼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여호와 앞에서 기쁨과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직 여호와 앞에서"(삼하6:12~23)

작성자
이인호
작성일
2022-09-28 07:09
조회
1177
전체 1

  • 2022-09-28 10:41

    "미갈" 참 기구한 운명의 여자였습니다.
    골리앗을 죽인 댓가로 사울왕은 자신의 딸 "미갈"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미갈"은 다윗을 사랑했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과 다윗에게 "미갈"은 한 낱 정치적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할 때, "미갈"은 다윗의 피신을 돕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의 피신을 도운 것처럼
    사랑없이는 절대 할 수없는 행동이었지요.

    그 후 사울 왕은 홀로지내던 "미갈"을 "발디엘"이라는 사람에게
    시집보냅니다. 그 후 "미갈"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런 행복에 배가 아프기라도 한 것처럼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버리고, 다윗에게 왔을 때
    다윗왕은 첫번째 아내 "미갈"을 다시 데리고 오게합니다.

    “나의 아내 미갈을 돌려주시오.
    미갈은 내가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를 바치고 맞은 아내요.”
    "미갈"을 사랑해서 다시 돌려 달라고 했다기 보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얻은 아내이니, 돌려 달라는 의미가 더 커 보입니다.

    다시 사랑하게된 새 남편을 뒤로 한 채 첫 사랑에게 다시 돌아 온 미갈

    그 미갈에게 보여진 다윗은 이미 여러 처, 첩을 거느린 왕이었습니다.
    왕비였지만, 사랑하던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처지의 가련한 왕비
    이런 환경들 속에 "미갈"의 비판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오늘 말씀의 사건 이후
    다윗왕은 "미갈"과의 관계를 끊고, "미갈" 역시 버림 받은 여자로
    평생을 살게됩니다.

    왕의 딸로 태어나, 정치적 이유로 첫사랑과 떨어지고,
    새 삶을 살려했지만, 정치적 이유로 첫사랑을 다시 만나
    사랑받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야 했던 기구한 팔자의 "미갈"...

    관망하는 자리에서 비판이나 하는 못된 왕비로 손가락질 받는 것이
    합당할까요?

    위로가 필요한 주변의 "미갈"을 찾아보고, 위로 하며, 위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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