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20210903 - "당당하나 겸손하게"(갈2:1~10)

바울은 언제나 당당했습니다. 동시에 겸손했습니다. 전도사역을 시작할 때 초대교회의 유력한 자들인 야고보와 베드로 그리고 요한 등을 사사로이 대했습니다. 그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일부러 애쓰지 않았습니다.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을 때 헬라인 디도를 데리고 갔는데 그가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구원의 조건에 할례를 강조하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의 올무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참된 자유를 그들은 빼앗고, 할례와 율법조항의 족쇄를 채워 성도들을 조종하려한다는 것을 바울은 알았던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랬지만, 교회 밖에서도 사람을 대하는 바울의 태도는 같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언제나 살폈습니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하지 않았습니다. 총독 앞에서나 저잣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 앞에서나 그는 당당하나 겸손했습니다. 말씀의 원칙을 지키나 예절을 지켰습니다. 공식적으로 대통령을 만나러 가면서 당당하다고 슬리퍼를 신고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엊그제 구역장수요반에서 한 분이, 친척 결혼식이 주일이었는데 1부 예배를 드리고 한복을 싸가지고 가 화장실에서 갈아 입고 예식에 참석했더니 고마워하더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주일예배 드려야 해서 못갑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당당하고 원칙을 지키는 것 같지만 사실 상대를 배려하지 못한 처사이지요.

바울의 당당하나 겸손한 태도에 초대교회의 유력자들은 그의 진심을 읽었습니다. 구제를 위한 모금에 계속 힘써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을 확인하며 인정했던 것입니다. 당당하나 겸손하게, 말씀의 원칙을 따르나 예절을 지키는 지혜롭고 향기로운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작성자
이인호
작성일
2021-09-03 08:35
조회
1889
전체 1

  • 2021-09-03 13:29

    오늘은 바울 선생님께서
    하나님을 통해 사도로 세움을 받고, 베드로와 야고보의
    인정을 받고 사역한지 14년 후, 바나바와 할례 받지 않은 헬라인 디도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갔었던 내용을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설명하십니다.

    이 설명을 통해
    갈리디아 교회들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의 의도를 드러내고
    디도를 내세움으로 그들의 주장이 잘 못된 것임을 주장하십니다.

    그리고 그 주장의 근거를 당시 교회의 유력한 자들이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인정하고 있음에 두십니다.

    바울 선생님이 10여년 동안 이루어 놓았던 행적 만 보더라도,
    그의 사도직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도, 바울 선생님은 갈라디아 교회들이 이해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자신의 사도 됨이 하나님과 사람의 인정을 모두 받은 것이라 설명하십니다.
    갈라디아 교회들을 향한 바울 선생님의 배려와 사랑이 절절이 느껴집니다.

    배려와 사랑은 관심에서부터 시작되고, 밖으로 나타냄으로 전해 집니다.
    바울 선생님께서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배려와 사랑을
    갈라디아 서를 통해 나타내셨듯, 저도 그런 배려와 사랑을
    누군가에게 나타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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