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20230207(화) - "예수님이 오신 목적" (마9:1~13)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 후, 마태복음 8장에서 임마누엘 예수님의 치유 사건을 다루면서 제자로서 온전한 따름과 온전치 못한 따름, 믿음이 작은 자와 믿음이 좋은 자의 모습을 함께 다루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9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입니다.

1절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8장의 사역 후에 본 동네, 즉 집이 있는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이 때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러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옵니다. 이 때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2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때, 중풍병자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과 다른, 어떤 서기관의 생각이 예수님께 들립니다.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이 때,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4절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예수님의 마음은 팔복을 누리지 못하는 중풍병자, 예수님이 꼭 필요한 이를 향한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입니다. 팔복을 그에게 선포해주신 겁니다. 적어도 너 죄 때문에 너가 아픈 것이 아니다~ 이것을 신성모독이라고 하는 서기관의 생각은 악함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5절, 6절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그리고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셨고, 중풍병자가 일어나, 중푸병에서 고침을 받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모습을 본 무리들이 두려워하며 고백합니다.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이어서 예수님이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죄 사하는 권세 정도가 아니라 죄인을 제자로 삼으신 사건입니다. 그 이유는 9절에 마태는 세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태를 제자로 부르신 다음에 예수님의 모습이 납득이 안되었을 겁니다. 마태의 집에서 앉아, 기대어 누워서 음식을 대접 받으시고, 이 때 마태의 상태는 죄에서 자유케 됨 기쁨, 잔치를 베푼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눕니다.

그러나 당시 세리는 어떤 존재인가? 11절, 바리새인의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이 때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12절~13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임마누엘 예수님의 마음은 긍휼함이고, 이 마음으로 죄인을 용서하시고 고치시고, 더 나아가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기꺼이 잔치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긍휼함이 우리에게 있기를, 예수님이 함께하는 잔치가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 (마9:1~13)

작성자
석광호
작성일
2023-02-07 07:07
조회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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