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20221005 - "죽어도 싼 자"(삼하11:14~27)

아들의 이름이나 자신의 영어 이름을 다윗(데이비드)으로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을 닮은 인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겠지요. 다윗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들에게 믿음과 삶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을 보면 그의 계획과 행위과 얼마나 악랄하고 교활한지 치를 떨게 합니다. 남의 아내를 강간하여 임신시켜 놓고 그녀의 남편인 우리아를 전장에서 불러 그 부부 사이에 생긴 아기로 만들기 위해 알리바이를 조성한 것이며, 그것이 통하지 않자 그를 최전선에 밀어 넣어 죽게 하라는 살인교사는 차라리 칼로 그의 목을 치는 것보다 더 잔인하고 구역질나는 처사였습니다. 자기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다하는 충신을 그렇게 대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다윗의 목을 즉각 칼로 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죽어도 싼 자였습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삼하11장 2절을 보면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녁 때에 침상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럼 한낮에 침상에서 무얼 한 것일까요? 물론 피곤하여 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과 생활에 무언가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점점 커져서 걷잡을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악은 그 초기에 통제 가능합니다. 그러나 어느 선을 넘으면 그것은 통제 불가능합니다. 그것에 도리어 조종당하게 됩니다. 다윗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사실을, 어스름한 저녁시간에 왕궁옥상에서 어슬렁거릴 때부터 철저히 깨달아야했습니다.

다윗은 우리아를 최전선에 들여보내 죽이라는 편지를 써서 그것을 우리아의 손에 들려 군총사령관인 요압에게 보냈습니다. 하는 한 가지, 한 가지가 다 기가 막힙니다. 더 이상 쳐다보기조차 싫은 모습입니다.

요압은 다윗의 악에 가담을 했습니다. 어질고 충성스런 장군을 불의하고 잔인하게 죽이라는 명령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어야 합니다. 상대가 아무리 왕이라 하여도 말입니다. 나중에 살펴 보겠지만, 다윗과 요압의 사이는 더 벌어졌고 이 두 사람의 인생은 핏빛으로 얼룩지고 맙니다. 악의 결과가 좋을 리 없습니다.

우리아를 적의 성벽 가까이에 밀어 넣어 죽게 하고서 우리아가 지나친 용맹심으로 그 위험한 곳에 간 것처럼 한 것과 요압에게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면서 전쟁에서 장수도 죽을 수 있다는 것으로, 다윗은 자신의 살인교사를 위장하려했습니다. 더 이상 이런 다윗의 모습을 언급하기조차 싫습니다. 그는 악질 중의 악질이었습니다. 그렇게 신실하고 아름다웠던 이전의 그의 모습은 오간데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다윗만 그럴까요? 악랄한 다윗의 목을 치고 싶은 나는 어떤가요? 물론 다윗의 악을 고발하고 모든 것을 바로 잡아 하나님의 의를 세워야합니다. 동시에 그를 반면교사로 삼아야하겠습니다. 늘 깨어 살필 때 악의 싹을 볼 수 있습니다. 악은 그 초기부터 제거해야합니다. 아침에 침상에서 일어나야지 저녁 때에 침상에서 일어나는 일부터 바로 잡아야할 것입니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하겠습니다. 죽어도 싼 자가 아니라 옆에 있어 고맙다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죽어도 싼 자"(삼하11:14~27)

작성자
이인호
작성일
2022-10-05 08:15
조회
1115
전체 1

  • 2022-10-05 12:56

    40대 초반
    "나에게 어떤 시련이 와도 나는 내 믿음으로 이길 수 있어"라며
    마음 속에 다짐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시련이 다가왔고, 저의 믿음은 하잘것 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기도와 QT 밖에 없었습니다.
    형편없는 저의 믿음은 무너지고, 주님의 은혜만이 남았을 때
    저에게 닥쳤던 시련은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 마음 속으로든, 밖으로든 "나의 믿음"을
    자랑(?)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일평생 믿음으로 일관하던 다윗에게 찾아 온 죄의 유혹...
    그리고, 그 죄의 유혹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다윗을 보며
    돌을 던질 수 없는 저의 모습을 봅니다.

    평생을 전쟁과 정치판에서 살아 온 다윗에게
    명분은 목숨보다 귀했을 것입니다.
    "밧세바"와의 죄를 숨기기 위해 명분을 쌓고 있는 다윗의 모습에서
    저를 발견합니다.

    "누구든지 죄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하나, 둘씩 손에 들고 있던 돌을 놓고, 자기 자리로 돌아 간 사람들은
    얼마나 양심적인 사람들인가요...
    명분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께 조차 돌을 던질 수 있는 저의 악한 본성을
    되돌아 봅니다.

    이렇게 못난 저를 예배로 불러 주시고, 만나주시고, 은혜로 용서하시는
    예수님께 찬양을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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