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20211120 - "가시나무"(삿9:7~21)

아비멜렉의 칼에 이복형제 70명이 살해당했을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가 막내 요담이었습니다. 요담은 아비멜렉과 그를 왕으로 추대한 세겜사람들을 향해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며 예언을 하였습니다.

요담은 나무우화를 들어 아비멜렉의 악행과 교만을 고발하였습니다. 하루는 나무들이 감람나무에게 가서 자기들의 왕이 되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감람나무는 자기의 기름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사명인데 어찌 그 자리를 떠나 나무들 위에 우쭐대겠냐고 하며 거절했습니다. 무화과나무에게 같은 요청을 했더니 단 열매를 맺는 것이 자기의 일이라 하면서 역시 왕의 자리를 거절했습니다. 포도나무도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을 떠나 나무들 위에 우쭐거릴 수 있냐고 하며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가시나무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무들의 요청을 따라 왕위를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자기 그늘에 피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불이 자기에게서 나와 백향목까지 사를 것이라고 교만을 떨었습니다.

가시나무는 아비멜렉을, 나무들은 세겜사람들을 비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자기주제를 모르고 날뛰었던 것입니다. 그것에 동조했던 세겜사람들도 그와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기적인 욕망을 좇는 악의 화신들이었습니다.

요담은 계속해서, 자기 아버지인 여룹바알 기드온이 죽음을 무릅쓰고 미디안의 손에서 건져낸 은혜를 잊어버리고 아비멜렉에게 가담한 세겜사람들의 배신을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형제이자 기드온의 아들  70명을 죽인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은 것이 얼마나 큰 악이며 불의인지를 지적했습니다. 결국 두 악의 화신인 아비멜렉과 세겜사람들은 지금은 서로 하나가 되어있으나 얼마 못가서 불이 되어 서로를 사르며 치게 될 것이라고 저주했습니다.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하신 그 자리에서 나의 사명을 다해야하겠습니다. 비록 좁은 길, 험한 길이라 할지라도 묵묵히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이기적인 욕심을 제거하고 의와 사랑의 길을 한걸음 한걸음씩 밟기를 원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거짓과 악에 가담하거나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의와 사랑의 길을 행하기 원합니다.

 

"가시나무"(삿9:7~21)

작성자
이인호
작성일
2021-11-20 07:31
조회
1713
전체 1

  • 2021-11-20 11:08

    아비멜렉은 여종의 아들이었습니다.
    사라의 여종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
    레아와 라헬의 여종 실바와 빌하의 아들들
    "단, 납달리" "갓, 아셀"

    그들이 어떤 컴플렉스를 가지고 살았을까?에 대해서
    상상을 좀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기드온의 70명의 자녀 중 종의 아들로 태어났던
    "아비멜렉"이 나머지 형제를 다 몰살 시킨 것이
    그의 잘 못된 권력욕으로만 해석되어야 할까요?

    어미의 쓰디쓴 고통을 함께 가졌던
    "이스마엘"은 이스라엘의 적이 되었고

    야곱이 에서를 만나러 갈때
    진영의 맨 앞에서 총알 받이(?)가 되었던
    "단, 납달리" "갓, 아셀"은
    요셉을 이집트에 팔아 버린 장본인들이 되었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야곱이 또 기드온이
    그의 아들들에게 같은 사랑을 베풀었고...
    그들을 "관계 중심"으로 키웠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목표 중심"과 "관계 중심" 중 어느 모델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델일까요?

    철저히 "목표 중심"으로 자녀를 낳았던 기드온의 실패...

    그 실패를 통해 "관계 중심"의 삶에 대한 꿈을 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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